포스팅/겨울엔 다들 좀더 아파지니깐 (33) 썸네일형 리스트형 연휴 마지막 날 원두 선물을 받았다. 기존에 있던 수동 그라인더를 다 버리고 자동 그라인더를 하나 장만했다. 다시 안 읽을 책들을 버리고 나눈다. 입지 않는 낡은 옷을 버린다. 남은 마음도 버리는 기분으로 버린다. 간소해져라. 가벼워져라. 그런 마음으로 버린다. 공들여 청소기 돌렸다. 새벽에 살아야겠다. 부엌 조명이 깜빡깜빡 완전히 나갔다. 매립 조명을 주문했다. 어제는 공황 없이 잘 잘 수 있을 것 같았고, 실제로 그랬다. 네 시에 깼지만 나쁘지 않다. 책 읽고, 물 마시고, 선인장을 돌본다. 같이 쓰던 넷플릭스 계정을 해지했다. 전 애인은 인스타그램에서 더 이상 내 계정에 좋아요를 누르지 않는다. 명절이면 본가 근처에서 중학교 동창을 만나 커피를 마시곤 했다. 이번엔 가족을 보는 게 아무래도 힘들어 본가에 가지 않았다. 그래도 친구는 만났다. 옛날에 같이 살던 동네에서 부대찌개를 먹었다. 연휴 때 책을 많이 읽었다. 총회 전에 결재받아야 하는 사업계획서도 정리해 두었다. 냉장고에 사과 네 알 있다. 깎아두었다가 이따 조조영화 보러 가서 먹어야겠다. 새벽엔 시간이 더디게 간다. 유튜브에서 공룡 영상을 .. 황무지 속 보석 찾기 "저는 저로 사는 게 너무 지겨워요." 상담 선생님한테 말했다. "선생님은 '나는 이런 모습이다'라고 정해놓고 그게 전부라고 생각하니까 지겨울 수밖에요."라고 답했다. 난 신조가 있다. 폭력을 쓰지 않는다. 고함을 치지 않는다. 화를 내지 않는다. 이런저런 신조를 만들어 놓고 꼭 지키려고 노력한다. 다 아버지의 모습과 반대되는 모습이다. "이십 년 넘게 운전을 하면서도 화를 낸 적이 드물어요. 화가 전혀 나지 않아요." 이렇게도 말했다. "화가 날 수도 있고, 화를 낼 수도 있는 거죠, 태랑 씨는 여러 모습을 가지고 있어요. 본인한테 여지를 좀 주세요." 상담 선생님이 말했다.전 애인도 신조가 있었다. 거짓말은 절대 하지 않는다는 것. 다툴 때 "왜 거짓말을 해?"라고 하면 화를 냈다. 다른 건 몰라도 .. 떠나는 사람과 남는 사람 어린 시절로 돌아가 아버지한테 맞는 꿈을 꿨다. 소리 지르면서 깼다. 어렴풋이 최근의 이별과 아버지의 불륜, 전 애인의 배신이 어떤 식으로 연관되어 있는지 힌트가 되었다. 어렸을 때 나는 버림받을까 봐 두려웠던 것이다. 돈을 버는 아버지한테 버림받을까 봐 두려웠고, 엄마한테 미움받을까 봐 두려웠고, 친구들 사이에선 초대받지 않은 곳에 가서 환영받지 않는 것을 두려워했고, 애인이 나를 떠나는 것 자체가 두려웠던 것이다. 누군가 나를 떠나는 게 두려워서 내가 떠나는 걸 택하려는 것일까. 죽고 싶은 것도 그런 건가. 오늘 상담에서 할 얘기가 없고, 정말 가기 싫었는데 얘기할 거리가 생겼다. 알겠어 아니 아무것도 모른다.의사는 약을 좀 더 늘리자고 했고 나는 늘리고 싶지 않다고 했다. 내일 오랜만에 상담받으러 간다. 할 말이 없는데. 2020년 5월부터 2024년 5월까지 질문 What is your favorite flower or plant? 가장 좋아하는 꽃이나 식물이 있다면?2020년 5월 1일 아카시아꽃 냄새만2021년 5월 1일 벚꽃 보는 것만2022년 5월 1일 이팝나무2023년 5월 1일 없다.2024년 5월 1일 없다.질문 Are you messy or neat? 나는 깔끔한 사람인가, 지저분한 사람인가?2020년 5월 2일 깔끔 떠는 사람2021년 5월 2일 깔끔한 사람2022년 5월 2일 깔끔한 사람2023년 5월 2일 깔끔한 사람2024년 5월 2일 깔끔한 사람질문 What would you like to say to your mother? 어머니에게 하고 싶은 말은?2020년 5월 8일 건강합시다.2021년 5월 8일 건강합시다.2022년 5월 8일.. 없던 일로 만들기 일기장에 일기를 쓴다. 1월 5일부터 어제까지 날짜를 2025년이 아니라 2024년으로 적었던 걸 방금 알게 됐다. 연초마다 하는 실수다. 대충 줄을 긋고 4를 5로 바꾼다. 이렇게 없던 일처럼 만들고 싶은 일들이 있다. 이를 테면 지난 연애 같은 것. 나도 지난 연애 얘기를 그만하고 싶다. 나도 지겨운데 듣는 사람은 얼마나 지겨울까. 어제 한 시에 자서 중간에 한 번 깨고 여섯 시에 일어났다. 정말 푹 잤다. 기분이 좋았다. 금요일마다 힘들어서 조퇴를 했는데 오늘은 끝까지 잘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어제 의정부에서 잤기 때문에 서울까지 한참 운전을 해야 하는데 오는 길에서도 기분이 좋았다. 길이 막혔는데도 그랬다. 음악을 들었다. 음악이라니. 휘파람도 불었다. 세상에. 나 진짜 거의 다 나아진 것.. 파노라마 어제는 건대에서 골목을 빠르게 달리는 오토바이에 놀라 공황발작이 왔다. 노이즈캔슬링을 켜고 울다가 멍하게 있다가 괜찮아졌다. 몸이 파르르 떨렸다. 스터디 마치고 역까지 가는 길에도 무섭고 몸이 떨렸다. 몸이 계속 떨린다. 잘 때도 몸이 계속 떨린다. 버틸만하다.(고 생각하는 게 나를 학대하는 걸까? 스스로에게 힘을 주려는 걸까?) 버틸만하다고 생각하지만 매번 새롭게 무섭다. 죽고 싶다는 생각은 여전히 한다. 근데 이렇게 죽을 수 없지, 같은 생각도 한다. 오늘은 도서관에서 책을 잔뜩 빌려왔다. 이걸 다 읽어야지. 죽을 수 없지. 죽고 싶지만 죽을 수 없지. 연휴 때 얼마나 쉬냐고 엄마가 묻길래, 본가는 편하지 않아서 이번에 안 갈 거야.라고 말했다. 엄마 표정이 안 좋았다. 근데 어쩌겠나. 나부터 살아야.. 이전 1 2 3 4 5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