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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팅/겨울엔 다들 좀더 아파지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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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력함 요새 자주 꿈을 꾼다. 꿈에서 나는 고립되어 있고, 무력감에 사로잡혀 있다.어떤 꿈에서는 얼굴에 있는 모든 구멍이 막혀 있다. 숨도 쉴 수 없고, 말도 할 수 없으며,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 표정조차 지을 수 없다. 당황한 나는 얼굴을 매만지며 꿈에서 깨어난다. 깨어난 후에도 얼굴이 얼얼하다. 스스로 뺨을 때리고 싶다는 충동을 억누르며 멍하니 앉아 있다.다른 꿈에서는 날카로운 창과 칼에 찔려 죽어가고 있다. 무릎을 꿇은 자세에서 입에선 피가 쏟아지고, 고통보다는 매캐한 냄새와 쇠 맛이 느껴진다. 내 몸은 창과 칼에 고정되어 있어서 움직일 수도, 누울 수도 없다. 죽음이 멀게만 느껴진다. 꿈에서 “살려달라”가 아니라 “죽여달라”고 빈다. 주위엔 아무도 없다. 어디선가 또 창이 날아와 몸에 박힌다.내가 홀..
생존 전 애인이 새 사람에게 반한 장소, 그 카페의 주인은 내 고등학교 친구다. 카페는 처음부터 내 마음에 쏙 들었다. 그래서 집에서 가깝지도 않은 그 거리를 하루가 멀다 하고 다녔다. 전 애인도 그 카페를 마음에 들어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가 직원을 구한다기에 전 애인을 소개해줬다. 왜 그랬을까. 나도 모르게 그렇게 했다.어느 날, 전 애인이 손님 중에 친해진 사람이 있다며 얘기했다. 잘 됐다고, 응원한다고 말했다. 전 애인은 사람을 대하는 걸 늘 어려워하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때는 아이처럼 신나 보였다. 신기했다. 밝게 웃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놓이기도 했다.그러나 체력이 없다고 늘 말하던 사람이 풀타임으로 일하고, 밤에도 시간을 보내고, 자고 오고, 그런 생활을 계속했다. 미련하게도 "피곤하진 ..
죽을 힘을 다해 사력을 다한다는 말은 얼마나 아이러니한가. 애도의 기간에 내가 죽음을 너무 쉽게 입에 담고 있지 않은가, 반성을 했다.  그동안 악몽 때문에 잠을 통 자지 못했다. 꿈은 자살 시도에 성공하지 못해 내가 사는 것도 죽는 것도 아닌 채로 목숨이 붙어있는 내용이었다. 나는 약에 취해 몽롱한 상태에서 삶을 포기하는 선택을 떠밀려서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 모처럼 맑은 정신에 그 악몽이 삶의 은유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지금 이렇게 살아있는 게 그토록 고통스럽다는 얘기였다. 내 감정을 보살피라고 다들 얘기하는데 어떤 게 진정 나를 보살피는 일일까. 잠시 쉬라고 하는데 나야 정말 쉬고 싶었으니 잘 됐다. 난 미련하게 살아있고 싶지 않다.  제발 지혜와 용기를 주세요. 이게 다 정말 멍청한 생각일까..
. 난 하찮은 존재가 아니다.난 소중하다.난 사라져도 되는 사람이 아니다.난 죽고 싶은 게 아닐 것이다.괜찮다. 괜찮아진다. 결국.살아도 된다, 희열아.
불면의 밤 잠만 잘 자도 좋을 것 같다. 며칠 째 두 시간, 세 시간 쪽잠을 잔다.  여전히 악몽을 꾸고 깬다.
존엄성 - 당신의 사랑은 얼마나 대단하기에 영화 에서 인모는 한모 대신 깡패들한테 맞으면서 이렇게 말한다.“처음엔 다 얘기해주려 그랬는데, 근데 마음이 변했어. 왜냐면 내가 자존심이 상했거든. 니들처럼 배운 게 없는 놈들은 잘 모르겠지만, 원래 사람은 이렇게 다루면 안 되는 거야. 우린 위대한 문명을 창조하고 최소한의 존엄성을 지키면서 살도록 제도를 발전시키며 살아왔거든? 니들이 무슨 짓거리를 하고 살아도 절대 그 사실을 잊어서는 안 돼, 이 양아치 새끼들아.”"니들은 날 짐승처럼 다뤘어. 그건 단지 나 개인을 두들겨 팬 게 아니라 인류가 수천 년 동안 피 흘리면서 이룩한 위대한 유산을 짓밟은 거야. 인간의 존엄성을 짓밟은 거라고!” 나도 존엄성을 짓밟은 기분을 느끼고 있다. 오늘도 내 뺨을 수도 없이 때렸다. 내 존재 자체가 무가치하다고 여겨진..
다독인다고 생각했던 착각 최근에 을 읽으면서 생각이 많아졌다. 책에서 나온 ‘느낌을 위한 공간 만들기’라는 개념이 특히 마음에 남았다. 감정을 수용하는 과정에 대한 내용이었는데, 나는 이 과정이 얼마나 나와 어울리지 않는지 느꼈다. 책에서는 “느낌을 거부하는 것은 자기 자신을 거부하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나는 내 감정을 거부하고, 외면하고, 스스로를 몰아세우고 학대하며 살고 있다. 나는 불편한 감정을 느끼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 문제를 객관화하면서 거리감을 유지하려고 한다. 이런 방식이 오랜 습관이 된 이유는 아마 감정에 압도당하지 않으려는 생존 전략으로 삼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에서는 감정을 느낄 새도 없이 해결책을 찾는 데만 온 에너지를 쏟는다.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다음엔 어떻게 해야 이런..
자해 언제부터였는지는 생각이 나지 않는다. 나는 스트레스를 극도로 받으면 내 뺨을 스스로 때린다. 마음이 요동칠 때, 영혼과 몸이 분리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 현실 감각을 되찾으려고 뺨을 때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차가운 충격만 느껴졌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충격 뒤에 따라오는 아픔이, 무감각했던 상태에서 나를 끌어내는 역할을 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 순간만큼은 내가 여기에 있다는 것을, 살아 있다는 것이 느껴진다. 그리고 또 곧바로 생각한다. 죽고 싶다. 죽고 싶어. 죽고 싶어. 편해지고 싶어.  아버지에게 뺨을 많이 맞았다. 내가 지금 나 자신에게 똑같은 표정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아무래도 넌 맞아야겠다. 내가 내 뺨을 때리는 것은 나를 향한 폭력이다. 나는 나 자신에게 화가 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