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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팅/겨울엔 다들 좀더 아파지니깐

자해

 언제부터였는지는 생각이 나지 않는다. 나는 스트레스를 극도로 받으면 내 뺨을 스스로 때린다. 마음이 요동칠 때, 영혼과 몸이 분리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 현실 감각을 되찾으려고 뺨을 때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차가운 충격만 느껴졌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충격 뒤에 따라오는 아픔이, 무감각했던 상태에서 나를 끌어내는 역할을 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 순간만큼은 내가 여기에 있다는 것을, 살아 있다는 것이 느껴진다. 그리고 또 곧바로 생각한다. 죽고 싶다. 죽고 싶어. 죽고 싶어. 편해지고 싶어.

 

 아버지에게 뺨을 많이 맞았다. 내가 지금 나 자신에게 똑같은 표정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아무래도 넌 맞아야겠다. 내가 내 뺨을 때리는 것은 나를 향한 폭력이다. 나는 나 자신에게 화가 나 있다. 그만큼 나를 몰아세우고, 내가 나를 용서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다. 

 

 최근에 상담소를 옮겼다. 이번 선생님한테 처음으로 자해 얘기를 꺼냈다. 상담사는 내담자의 상담 내용을 발설하지 않을 의무가 있다. 다만, 내담자가 자신이나 타인의 생명을 해할 가능성이 있는 경우 예외로 둔다. 센터에서 비상연락처를 적으라고 했다. 긴급 상황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의 연락처가 필요하다고. 가족한텐 알릴 수 없었다. 나는 집에서 가까이 사는 친구의 연락처를 적었다. 친구에게는 아직 이 사실을 말하지 못했다.

 

 나는 나의 나약한 모습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기적인 모습도 나의 일부라고 여기지 않고 애써 죽이며 살아왔다. 자해를 한다는 것은 몸이 보내는 신호이다. 나의 모습을 부정하지 말라고, 살려달라고. 사이렌을 울리고 있는 것이다. 교과서에 적혀있는 내용이다. 배워서 안다. 머리로는 알고 있다. 절대로 죽지 않을 거라는 결심과 죽으면 이 모든 게 편해질 거라는 생각을 저울질 하고 있는데 다시 간당간당하다. 붙잡고 붙잡고 또 붙잡는다.

 

 성인이 되고 나서 내내 자살 징후가 있었다. 교통사고가 나면 좋겠다. 지하철 선로에 떨어지고 싶다. 다산관 외부계단에서 떨어지면 죽겠지? 먼저 떠난 친구들을 그리워하고 목놓아 슬퍼하면서도 내가 우울할 때면 부러웠다. 괜찮니? 그래서 편해졌니? 넌 성공했구나. 이런 생각이 들어서 소스라치게 놀랄 때도 많았다. 친구의 가족들에게 죄스럽고 내가 하찮게 여겨졌다. 미안했다. 감히 내가 뭐라고 이런 생각을. 미안하다. 미안해. 잘못했어.

 

 스스로 근사하고 세련된 사람이 되길 바란다. 대외적으로 완벽함을 추구한다. 내가 피해자임이 분명한 상황에서도, 내게 아픔을 준 사람을 걱정한다. 죄책감을 갖지 않았으면 한다. 일하는 곳에서 계속 일했으면 한다. 그건 생계니까. 심지어 전 애인이 새로 만나는 사람까지도 걱정했다. 이렇게 가식적일 수가. 내가 애초에 없었으면 되지 않았을까? 그렇게 생각한다. 나를 제일 먼저 두고 생각하지 못한다. 또 뺨을 계속 때린다. 

 

“남을 위하듯 나를 한 번 위해보세요. 스스로를 위로해 주세요. 나를 봐줘요.”

“모르겠어요. 내가 뭘 좋아하고, 내가 어떤 걸 느끼는지 모르겠어요. 어떻게 해야 기분이 나아지는지 모르겠어요.”

“지금 기분이 어떠세요?”

“우울해요.”

“우울함은 진단이에요. 더 직접적인 느낌이 있을 거예요. 화가 난다거나, 슬프다거나.”

“슬퍼요. 선생님. 많이 슬퍼요.”

 

 이 슬픔을 받아들이고 싶다. 나 자신을 부정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싶다. 나약한 모습도, 이기적인 모습도 나의 일부임을 인정하며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싶다. 나를 더 이상 때리지 않고, 나를 위로하며, 나를 위해 살아갈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내가 우리 학생들을 바라보는 그 눈빛으로 사랑스럽게 나를 보고 싶다.

 

 그전까지는 좀 도와주세요. 나 대신 나를 안아주고 위로해주세요. 엄격한 소린 참고 많이 보듬어주세요. 미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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