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애인이 새 사람에게 반한 장소, 그 카페의 주인은 내 고등학교 친구다. 카페는 처음부터 내 마음에 쏙 들었다. 그래서 집에서 가깝지도 않은 그 거리를 하루가 멀다 하고 다녔다. 전 애인도 그 카페를 마음에 들어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가 직원을 구한다기에 전 애인을 소개해줬다. 왜 그랬을까. 나도 모르게 그렇게 했다.
어느 날, 전 애인이 손님 중에 친해진 사람이 있다며 얘기했다. 잘 됐다고, 응원한다고 말했다. 전 애인은 사람을 대하는 걸 늘 어려워하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때는 아이처럼 신나 보였다. 신기했다. 밝게 웃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놓이기도 했다.
그러나 체력이 없다고 늘 말하던 사람이 풀타임으로 일하고, 밤에도 시간을 보내고, 자고 오고, 그런 생활을 계속했다. 미련하게도 "피곤하진 않나?" 하고 걱정했다. "내가 더 자주 가서 얼굴 보면 되지," 이렇게 생각했다.
11월 8일이었다. 아침 여덟 시, 카페가 문을 열자마자 들어가 원고를 썼다. 전 애인이 내 자리로 와서 메모 어플에 글을 남겼다.
"태랑, 매일 보러 와줘서 고마워. 진짜 사랑해."
이제 그 메모는 지웠다. 사람 마음은 변한다.
그 이후로는 카페에 가지 못했다. 창피해서 갈 수가 없었다. 선생님은 '창피할 사람은 태랑 씨가 아니'라고 말했지만, 나는 의아했다. 만약 전 애인이 상담소에 내담자로 찾아간다면 선생님은 뭐라고 했을까? "이미 지난 일은 어쩔 수 없어요. 본인이 한 선택을 믿고 마음을 따르세요," 이런 얘기를 하지 않았을까. 허무했다. 전 애인이 새로 좋아하는 그 사람도 상담을 받는다면 뭐라고 할까? "어차피 전 애인이 용서한다고 했다면서요. 본인을 용서하세요. 지금 만나는 사람에게 집중하세요. 더 열심히 사랑하세요." 이렇게 얘기하겠지.
(이런 게 편집증의 증상이라고 한다. 생각이 끊임 없이 돌아가 약을 늘렸다.)
죽고 싶었다. 창피해서 죽고 싶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상담사가 나에게 해준 말들이 믿기지 않았다. 그냥 위로하려고 하는 말들일 뿐이라고 느껴졌다. 속으론 "참 한심하군"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상담소에 찾아오는 사람들 중에서 나는 몇 번째로 힘든 사람일까. 사소한 문제로 보일까. 나는 사소한 존재일까.
오늘도 수업 중에 공황이 왔다. 동료 선생님에게 양해를 구하고 작은 방으로 들어가 문을 잠근 뒤 모로 누워 울었다. 몸이 전기 충격기를 맞은 것처럼 떨렸다. 그때, 우리 반 학생이 문을 열려고 했다. 꼬불꼬불 뱀이 그려진 신년 카드를 받았다.
"고마워, 선생님이 집에 가서 꼭 붙여 놓을게."
나는 웃으며 아이의 볼을 톡톡 두드렸다.
오늘도 죽지 않고 살아 있다.
(그리고 이건 미련한 게 아니다)
얼마 전 글에 댓글을 단 분께
보통 댓글 비허용으로 해두는 데 제가 깜빡한 것 같습니다. 응원해주시는 마음 잘 받았습니다. 다만 댓글을 볼 수록 마음이 힘들어 고민하다 지웠습니다. 모쪼록 양해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