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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해방일지> 정지아,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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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해방일지

김유정문학상 심훈문학대상 이효석문학상 등을 수상하며 문학성을 두루 입증받은 ‘리얼리스트’ 정지아가 무려 32년 만에 장편소설을 발표했다. 역사의 상흔과 가족의 사랑을 엮어낸 대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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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제일 좋아하는 사람은 아버지"라고 답하는 사람이 있다. "나는 아빠랑 제일 친한 친구"라고 말하는 사람과 동류다. 나는 그런 사람과 친해지는 게 늘 어려웠다. 그보다는 가족이 정말 싫고, 가족에서 벗어나는 게 지상 최대의 과제라고 말하는 사람과 얘기가 훨씬 잘 통했다. 행복한 가정은 비슷한 이유에서 행복하고 불행한 가정은 각자의 이유가 있다고 하던데(톨스토이, <안나 까레니나> 中) 어쨌든 같이 가족 욕을 하면 속이 후련했다. 한참 뒤에 생각해보니 아마 화목한 가정이 부러워서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아는 아버지는 아버지의 정말 일부일 것이다. 그런 생각을 요즘 하고 있다. 추석 때 아버지가 어디서 태어났으며 언제 서울로 올라왔는지 여쭤봤다. 정보로서는 알고 있었지만 세세한 사정은 몰랐다. 젊은 아버지는 언뜻 기억에 있는데 어린 아버지는 낯설었다. 아버지는 내가 그랬던 것처럼 아버지의 아버지가 싫었을까. 소설에서 '아버지의 아버지' 얘기가 스치듯 나온다(형을 자랑스러워했던 동생의 증언 때문에 그들의 아버지가 죽었다). 그래서 평생 형을(혹은 자신을) 싫어했던 '짝은아빠'가 장례식장에 나타나는 장면을 숨죽이면서 읽었다.

엄마는 왜 아버지와 결혼해서 나를 낳았을까, 라는 생각도 오래 했었는데 성립이 안 되는 질문이다. 그러지 않았으면 내가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감정을 느끼는 존재라는 것이 모두 둘의 만남에서 기인했음을 알고 감사하려고 한다. 소설 속 아버지가 유물론자에 사회주의자라면 우리 아버지는 뭐라고 설명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도 해본다. 아버지에 대해 궁금하다, 는 마음이 드는 게 처음이다. '아버지'는 무엇으로부터 해방하려고 하는가. 철 지난 사회주의자로 계속 살아가며 어디에 가 닿으려 했을까. 소설 속 인물들에 탐닉하며 우리 아버지보다 그들에게 더 몰입하는 게 조금 부끄러웠다.

그래서 아버지에게 질문을 할 수 있을 때 또 다른 질문들을 해볼까 한다.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시는지. 사람을 사람이게 하는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나는 어떤 아들이고, 나의 어떤 점이 마음에 드는지. 삶의 과정에서 후회하는 점은 없는지. 나와 어떤 시간들을 더 보내고 싶으신지. 시간은 너무 많이 남아있지 않다. 너무 늦게 물어 답을 듣지 못하는 일이 없길 바란다.